행복이야기

2016년 프루치운 쿨라 행진기-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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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02 16:27 조회2,3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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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지라는 의료봉사-김금중

1. 즐거운 의료봉사

처음 행진에 참여할 때 열흘 이상 잘 걸을 수 있을까하는 약간의 걱정과 영적으로 성숙하고 주님과의 일치와 생의 갈증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참여하였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한낮의 열기에 걷기에도 헉헉되는 이 와중에 또 하나의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료봉사 일이었다. 이미 30여년의 직업에 대한 사명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일로 형제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시작하였다.
행진 이틀이 접어들자 물집이 잡히는 형제들이 있었다. 아직은 서로를 잘 몰라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기가 어려워 혼자서 물집을 따고 소독을 하며  거즈로 발가락 사이를 감싸 정성껏 치료 해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스팔트길을 왼종일 걸으며 발을 혹사해서인지 숙소에 도착하면 여기저기 발을 치료해달라고 줄을 선다. 혼자 쩔쩔 매는 것을 보고 한 자매가 보조를 하겠다고 나서며 반창고를 잘라주고 진료소(방바닥에 펼친 응급 진료소를 의미함) 환자가 많으니 스스로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면 형제들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다른 형제들은 다음날을 위해 짐을 싸고 잠자리를 마련하여 잠의 청 할 때 형제들을 치료하다보면 피곤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아직 대기하는 분이 있다. 야속하게도 잠을 자야하니 불을 끄라고 성화하는 형제의 말은 섭섭함으로 다가왔다. 또한, 아쉽게도 행진날이 길어지고 힘들고 지칠수록 보조를 담당한 자매들은 파업 아닌 파업으로 슬그머니 그 역할을 마감한다. 하지만 물집을 따고 치료 후 다음날 다시 진료소을 찾는 형제의 발가락이 아문 것을 보면 뿌듯하고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2. 가중해진 업무
진료소를 자주 찾는 단골손님이 계셨다. 수사님이셨다. 물집이 양쪽 발에 심하게 생겨 치료하지만 발을 쉬지 않고 또 걷으니 다시 물집이 잡히고 그 안에 피가 가득 고이는 것이다.
몇일 반복되니 왠지 걱정이 되어 행진 후 순천의료원으로 모시고 가서 응급 치료를 받았다.
의사가 물집따고 약을 주며 걸으라고 치료해준 것이 아니라 걷지 말고 쉬라는 원칙적인 이야기만 했다. 물집은 쉬면 나겠지만 계속 걸어야 하니 나을 겨를이 없이 또 물집이 잡히는 것이다. 다행히 수사님께서 항생제를 복용한 후 좀 나아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새벽 3시 반에 눈을 뜨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짐을 챙기느라 바삐 움직인다. 시간이 촉박한 와중에도 발을 밀며 치료해 달라고 하는 자매가 있다. 간단히 치료하고 급히 시간을 맞추다보니 양말에 발가락을 다 끼우지 못하고 출발을 하였다. 비상품이 떨어져 낯선곳에서 약국을 발견하여 대열에서 빠져 응급 약을 사고 난후  멀리 떨어진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뛰어갔다.
모처럼 휴식을 취한다.
너도 나도 취진 몸으로 자리를 잡고 갈증을 달랜다.
신발을 벗고 바다에 앉자마자 한 형제가 부른다 “ 크리스티나 자매” 다리가 아픈데 파스 어디있냐며  찾는다. 응급 약 박스는 응급을 대비하기 위해 운행한 차량속에  있지만 내가 챙겨 불편 한곳에 뿌려주기 바라는 것이다.
오늘은 무척이나 힘든 여정이다. 뙤악볕에 걷기도 힘들고 지친 모습들이다.
점심을 먹기위해 나무그늘에 일행이 짐을 풀었다.
자매도 지치고 힘들었는지 누구하나 점심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우선 수박 한 덩이를 자라 형제 자매에게 나누어 준뒤 점심으로 싸온 주먹밥을 먹는둥 마는 둥 하고 좀더 쉬고 가자는 결정에 따라 나무그늘아래 배낭을 베고 낮잠에 들었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매님! 하며 잠결에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형제님이 왕벌에 물렸다고 하였다.
등에 여덟 개 자국이 있었다. 맥박을 재보니 빨라지고 있어 황급히  119을 불렀다.
여러 가지 상황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마음을 조아리며 기다리는데 빨랐던 맥박이 돌아오고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다행히 가라앉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주님께 감사드렸다.
쇼크라도 일어났으면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응급실 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무더위에 이 팀을 이끌고 계신 김찬선 신부님의 고뇌가 다가오는 듯 했다.
물론 주님께서 이끌고 계심도 함께 느끼는 시간 이었다.

3. 나도 치료해주세요
정자 나무 그늘에서 호사를 하게 되었다. 본부 팀에서 냉커피를 준비한 것이다.
신발을 벗고 편안하게 자라잡고 냉커피를 한 모금 마신 순간 형제들 사이로 나를 바라보시며“ 크리스티나 자매” 라고 부르시는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순간에 특별히 나를 찾을 일이 없을텐데하며 순간적으로 스치는 직감이 있었다. 위쪽을 가르키며 저기좀 가보라고 하셨다. 맨발로 뛰어 올라가 보니 한 자매가 쓰러져 있었다. 더위에 탈진되어 온몸이 순환이 안되어 쓰러진 것이다. 수녀님께서 침을 놓고 나는 온몸을 마사지하여 혈액순환이 되어 회복했다. 순환차를 타고 자매를 태워 목적지에 먼저 도착했다. 다행히 자매는 회복되었다. 
긴 하루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했다. 몸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몸과 마음이 부댓기고 있었다. 얼굴에 두드러기가 생기고 얼굴이 붓는 듯했다. 이제 나를 케어해달라고 몸에서 반응하고 있었다. 본부팀의 의료담당 수녀님께 약이 있느냐고 여쭈니 없다고 하였다. 나에게도 해당 약은 없었다. 어느덧 어스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 상태로 밤을 맞이하기에는 무리인 듯 했다. 내 몸이 아파 약을 사야하는데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 형제들이 식사하는 테이블에 갔다. “약을 사야하는데요” 라고 말하니 아무도 반응이 없다. 제가 “두드러기가 나서요”
하고 말하니 요한 형제님이 가시겠다하여 아까 오다가 약을 샀던 약국으로 가타리나 자매와
함께 내약을 사러 갔다. 약을 먹고 쉬고 있는데 급히 찾는 전화가 왔다.  아까 쓰러진 자매에게 주사를 놓으라는 것이다. 숙소에 가보니 2000cc 수액이 준비되어 있었다. 
밤 9시였다. 내 몸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오늘 따라 이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내몸도 말이 아닌데 저 주시를 놓고 다들어가는 것을 보고 마무리 하려면 밤새 지켜야하니 말이다.
병원에서 일할 때도 8시간 이상 근무는 하지 않는데 오늘 근무는 몇시간이 되는 걸까?
하지만 누워있는 자매를 보며 속에서 일어나는 나의 입장을 입밖로 내지는 못하였다.  “오늘 1000cc만 맞아야겠어요” 라고 말한 뒤 의료인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껏 주사를 놓았다.
들어가는 것만 보고 있을 수 없어 잠시 누웠다.
온몸에 열기가 오르며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나도 주사를 맞아야하는데 주사 맞는 자매를 지켜야 하니 몸도 고달프고 그 동안의 의료봉사 일들이 스쳤다. 오늘은 이런 저런 작은 일들이 있었다. 여정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이 무겁고 힘들다고 불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작은 고통조차 힘들다고 투정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4. 주님께서 원하시는 겸손

이제 수도자와 합류하면서 전체 행사가 되었다.
본부에 의료팀이 있어 조금은 부담이 줄어들고 안도가 되었다.
의료팀 한 베로니카수녀님과 늦은 밤 그동안 의료봉사하면서 느낀 신앙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거룩한 모습처럼 모인 것 같지만 이곳에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러 온 것이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나또한 주어진 일을 다해냈다고 주님께 알아달라며 투정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겸손과는 차이가 있다는 말씀을 들으니 인간의 기준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를 부르시고 초대하신 주님은 여러 상황을 연출하며 드라마틱하게 깨닫게 해주신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겸손의 차원이 아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차원은 감히 잴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의 내적 움직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오늘에야  주님께서 펼쳐주시고 만들어 주신 자리라는 사실을 오늘에야 깊이 깨닫게 되었다. 주님께서  주셨으니 필요할 때 기꺼이 순명하며 따라야 함을 깨닫게 해주셨다.
한없이 낮아지라는 주님의 말씀이 들리는 듯 하다
내가 정한 기준이 아니라 셈이 다른 주님의 기준이 어디까지일까?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의료봉사일이었다.
부족하여 알아듣지 못하니 주님은 여러 사건을 통해서 알려주고 계셨다.
 “작게 더 작게 더 작아져라” 하신다.
2016년 7월 더운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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