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포르치운 쿨라 행진기-바람결에 오시는 주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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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9-21 00:10 조회4,1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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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바람결에 오시는 주님
1. 나를 들여다 보는 나
인생의 한길목에서 자신과의 화해와 용서, 주님과의 내적 만남을 기대하며 주님께 행진 일정을 봉헌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렸다. 아침햇살에 나뭇잎들이 반짝이며 인사를 하고 새들도 노래를 하는 듯 했다. 누구나 한평생 살다가는 삶인데 몫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행진은 시작되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열기를 뚫고 천호성지를 향해 걸어갔다. 막바지 오르막길은 숨이 막히고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인생길을 걸어가듯 걷다보니 성지에 이르렀다. 녹색의 자연에서 잠시 쉬며 시원한 물로 갈증을 달랜 뒤 목적지인 경로당에 도착했다. 하루일정을 무사히 해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저마다의 모습과 색깔로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에 한발 한발 걷고 또 걷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손에는 묵주를 들고 마음을 모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순례하신 것처럼 자연속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한 귀한 시간이 될 거라 믿으며 성인처럼 자유롭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자유로움은 거져 오는가?, ‘내 마음에 있는 무거운 많은 것들을 버려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다시 데미샘을 향하여 걸어가는데 생애주기가 주마등처럼 스치운다. 주님께서 거져주신 많은 것들을 내 것 인양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사랑하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장면들도 하나 둘 스치며 가족의 얼굴도 스친다. 살면서 그동안 가슴속에 있는 상처들은 모두 치유하고 싶어진다. 열심히 살았으나 묶어진 매듭들! 버리고 비우고 싶었다.
태초에 주님께서 이세상에 보내실 때처럼 자유함과 본연의 그대로의 모습이고 싶어진다. 자연속에서 주님과 몰입하는 시간은 자유롭고 평화 그 자체이다.
길을 걷다보니 수박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오늘은 먹을게 많치 않으니 탁발을 해야한다고 하셨다. 용기를 내어 농부에게 다가가 취지를 설명하고 수박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아직 덜 익었을 거라며 아주 큰 수박 한 덩어리를 주셨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수박을 잘라보니 아주 잘 익어 뜨거운 수박이지만 모두가 한 쪽씩 먹으며 갈증을 달랬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이었다.
걷기만 하는 이일은 모든 에너지가 하나로 집중되며 잡다한 생각을 버리게 했다.
숙소에 당도하니 저녁식사와 샤워, 빨래 등 일상의 일들은 하나의 큰 과제로 다가왔다. 저녁식사 후 진료소를 열어 물집이 생긴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의료봉사를 했다. 각자의 개성을 지녀 저마다의 소리를 내는 모습은 당연하지만 생소하고 낯설기만 했다. 너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있고 나의 모습에 너의 모습이 뒤범벅되어 메아리쳤다. 그 재잘거림은 부족한 인간들이 바치는 주님 향한 기도로 봉헌되는 듯했다. 주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깨닫고자 모인 작은 종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무리 속에 있는 한사람, 아주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주님 향한 열망으로 어둠과 빛을 지닌 모습으로.
2.주님과 나눠지는 십자가의 은총
이제 일주일정도 행진을 하다보니 행진이 익숙해졌다. 남원에서 자전거 길로 걷고 있었다. 형제가 십자가를 들고 걷는 모습을 보며 십자가를 들고 걸어보고 싶었다. 마침 한 형제가 십자가를 구름기둥형제에게 건네주시려는 순간 받아 들었다. 십자가를 들고 걷는 순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주님의 상징이신 십자가인 것이다. 처음에는 좀 무거운 듯했다. 왼손으로는 십자가를 잡고 가슴에 딱 부쳐 지탱하고 오른손에는 묵주를 들었다. 조금 걷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주님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님의 십자가 지심을 묵상하게 되었다. 우리를 위해 지고 가신 주님의 십자가를 떠올렸다. 조금 걷다보니 내 인생의 십자가가 무겁다고 주님께 하소연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의 십자가는 나에게 맡겨라’ 하시면 바람결에 속삭이시는 듯 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니 어디선가 힘이 솟아나고 십자가가 무겁지 않았다.
인생의 나의 십자가 또한 주님과 함께 한다면 무겁지 않고 두려울 것이 없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언제나 주님은 내 인생에 깊숙이 개입해서 함께 하셨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그늘진 향가터널에 도달하자 신부님께서 이곳에서 주님께 찬미드리자고 하셨다. 신부님의 지휘에 맞춰 ‘주 하느님 크시도다’를 합창하는데 기쁨이 샘솟아 온몸으로 주님께 찬미드리고 있었다. 어둠에서 빛을 향해 가겠노라며 주님의 빛을 향해 몸짓하고 있었다. 주님과의 동행이라면 어떠한 어둠도 주님의 빛을 이길 수 없기에 그 강한 열망으로 빛의 삶을 살아낼 수 있으리라 희망하고 있었다.
3. 흐드러진 감나무가지의 몫
성소자 수도자 등 포르치운쿨라로 향한 전체 팀이 구례성당에 집결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전체 프란치스칸 가족이 함께 모인 것이다. 남은 기간은 마음과 귀와 눈을 열어 오감을 통해 주님 말씀을 깨닫게 되길 기도했다. 긴 행렬을 따라 포르치운쿨라 주제를 담은 프랑카드를 몸에 두르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미스코리아가 되어 행진하듯 깃발을 들고 주님 향해 뽐내며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주님을 따르는 제자 중 한명처럼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걸었다.
산길을 걸으며 라베르나 은둔소를 향해 걸을 때는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기도하시고 오상을 받으신 성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주님을 모시는 영적 공간이라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거룩해지는 듯 했다. 이 여정에서 주님의 소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줄이고 마음을 비우고 주님의 것으로 채워야함을 묵상했다. 자연과 형제들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 더욱 충실하고 단순하게 걸어야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온갖 피조물들은 속삭이고 있었다. 대나무 숲길에서는 대나무의 곧음을 묵상하게 되었다. 삶속에서 만나는 옳고 그름을 선택 할 때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살아야함을 묵상하게 되는 숲길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에 나눔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오신 신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이 보이느냐고 물으셨다.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더니 신부님께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귀하고 너도 귀한 존재로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만드신 귀한 존재이다. 우리옆에 있는 자매, 형제 속에 하느님이 계시니 조금 앞선다고 조금 뒤쳐진다고 함부로 말하고 대할 수 있겠느냐?’며 반문하신다.
그동안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쉽게 판단하고 세상의 잣대로만 보았음을 반성하였다.
이제 드디어 산청 성심원을 향한 막바지 행진길에 접어들었다.
이 여정에서 만난 형제, 자매, 신부님, 수녀님의 모습들!
주님께 주신 몫에 충실하고자 그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는 목적만은 같은 듯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을 형제회, 형제, 자매들의 정성어린 도움을 받으며 주님의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베풀어주시는 은총과 음식을 받아먹으며 내가 수고한 것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의 음성처럼 살포시 불어오는 바람, 인내를 깨닫게 하는 뙤약볕, 들에 핀 꽃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인간이 피조물을 아끼고 어우러질 때 세상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산자락을 넘어 마을로 향하게 되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마을은 아주 평화롭게 보였다. 지난 일정의 파노라마처럼 스치며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함이 밀려왔다.
‘어찌 이리도 사랑하시기에 모든 일을 다 뒤로 하게 하시고 이곳에 불러주신 것일까?’ 어쩌면 교만하여 알아차리지 못하니 이곳에 부르시어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하신 것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흘러내린다. 오로지 이순간만은 시 공간을 초월하여 주님과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길가 한복판에 주저앉았다. 주님께 침묵하며 봉헌하는 시간이고 싶었다. 가슴에서 복받치듯 뜨거운 감사의 마음이 소용돌이 쳤다.
성령께서 인도해주시는 기쁨과 통회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주님께서는 부족한 죄인을 아끼시어 어느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주님을 따르도록 기다려주며 깨우치고 계셨다.
길가 한옥의 담장넘어 길게 늘어진 감나무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가지를 지탱하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가느다란 줄기에는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저 여린 나뭇가지도 제 몫을 다하고 있는데, 내게 주신 몫에 대하여 순종하는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힘들다고 불평하고 인내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스쳤다. 이 세상 살면서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에 대하여 달게 받고 짊어지고 가리라 마음먹어본다. 세상의 중심이 아닌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으로 채워야겠다.
성프란시스코 성인은 나환자의 역겨움이 단맛으로 느껴졌다고 하셨는데 나환자까지는 아니어도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도 단맛으로 느끼게 될 수 있어야함을 깨닫게 되었다. 작고 낮은 자 되어 가족에게 더욱 사랑을 전하고 직장에서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을 죽임으로서 주님을 드러나게 해야겠다. 물질의 풍요로움을 갈구하기보다는 절약과 가난의 정신으로 매순간 깨어있어야겠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내자.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주님을 믿으며 주어지는 십자가를 달게 받아 짊어지고 가리라. 남은 인생은 좀더 다른 모습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닮고자 흉내내며 가보리라. 어둠과 빛이 공존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힌 프란치스코성인의 고백처럼 제 마음의 어두움을 비추어주실 주님을 믿기에 부족한 자신을 봉헌하고 다시 행진을 시작하고자 한다.
“ 나는 걷는다. 나의 인생을! 주님의 이름으로 걷는다!”
김금중크리스티나
2016년 도보행진기-"길따라 주님따라"에 실린 글
1. 나를 들여다 보는 나
인생의 한길목에서 자신과의 화해와 용서, 주님과의 내적 만남을 기대하며 주님께 행진 일정을 봉헌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렸다. 아침햇살에 나뭇잎들이 반짝이며 인사를 하고 새들도 노래를 하는 듯 했다. 누구나 한평생 살다가는 삶인데 몫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행진은 시작되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열기를 뚫고 천호성지를 향해 걸어갔다. 막바지 오르막길은 숨이 막히고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인생길을 걸어가듯 걷다보니 성지에 이르렀다. 녹색의 자연에서 잠시 쉬며 시원한 물로 갈증을 달랜 뒤 목적지인 경로당에 도착했다. 하루일정을 무사히 해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저마다의 모습과 색깔로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에 한발 한발 걷고 또 걷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손에는 묵주를 들고 마음을 모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순례하신 것처럼 자연속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한 귀한 시간이 될 거라 믿으며 성인처럼 자유롭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자유로움은 거져 오는가?, ‘내 마음에 있는 무거운 많은 것들을 버려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다시 데미샘을 향하여 걸어가는데 생애주기가 주마등처럼 스치운다. 주님께서 거져주신 많은 것들을 내 것 인양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사랑하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장면들도 하나 둘 스치며 가족의 얼굴도 스친다. 살면서 그동안 가슴속에 있는 상처들은 모두 치유하고 싶어진다. 열심히 살았으나 묶어진 매듭들! 버리고 비우고 싶었다.
태초에 주님께서 이세상에 보내실 때처럼 자유함과 본연의 그대로의 모습이고 싶어진다. 자연속에서 주님과 몰입하는 시간은 자유롭고 평화 그 자체이다.
길을 걷다보니 수박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오늘은 먹을게 많치 않으니 탁발을 해야한다고 하셨다. 용기를 내어 농부에게 다가가 취지를 설명하고 수박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아직 덜 익었을 거라며 아주 큰 수박 한 덩어리를 주셨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수박을 잘라보니 아주 잘 익어 뜨거운 수박이지만 모두가 한 쪽씩 먹으며 갈증을 달랬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이었다.
걷기만 하는 이일은 모든 에너지가 하나로 집중되며 잡다한 생각을 버리게 했다.
숙소에 당도하니 저녁식사와 샤워, 빨래 등 일상의 일들은 하나의 큰 과제로 다가왔다. 저녁식사 후 진료소를 열어 물집이 생긴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의료봉사를 했다. 각자의 개성을 지녀 저마다의 소리를 내는 모습은 당연하지만 생소하고 낯설기만 했다. 너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있고 나의 모습에 너의 모습이 뒤범벅되어 메아리쳤다. 그 재잘거림은 부족한 인간들이 바치는 주님 향한 기도로 봉헌되는 듯했다. 주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깨닫고자 모인 작은 종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무리 속에 있는 한사람, 아주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주님 향한 열망으로 어둠과 빛을 지닌 모습으로.
2.주님과 나눠지는 십자가의 은총
이제 일주일정도 행진을 하다보니 행진이 익숙해졌다. 남원에서 자전거 길로 걷고 있었다. 형제가 십자가를 들고 걷는 모습을 보며 십자가를 들고 걸어보고 싶었다. 마침 한 형제가 십자가를 구름기둥형제에게 건네주시려는 순간 받아 들었다. 십자가를 들고 걷는 순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주님의 상징이신 십자가인 것이다. 처음에는 좀 무거운 듯했다. 왼손으로는 십자가를 잡고 가슴에 딱 부쳐 지탱하고 오른손에는 묵주를 들었다. 조금 걷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주님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님의 십자가 지심을 묵상하게 되었다. 우리를 위해 지고 가신 주님의 십자가를 떠올렸다. 조금 걷다보니 내 인생의 십자가가 무겁다고 주님께 하소연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의 십자가는 나에게 맡겨라’ 하시면 바람결에 속삭이시는 듯 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니 어디선가 힘이 솟아나고 십자가가 무겁지 않았다.
인생의 나의 십자가 또한 주님과 함께 한다면 무겁지 않고 두려울 것이 없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언제나 주님은 내 인생에 깊숙이 개입해서 함께 하셨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그늘진 향가터널에 도달하자 신부님께서 이곳에서 주님께 찬미드리자고 하셨다. 신부님의 지휘에 맞춰 ‘주 하느님 크시도다’를 합창하는데 기쁨이 샘솟아 온몸으로 주님께 찬미드리고 있었다. 어둠에서 빛을 향해 가겠노라며 주님의 빛을 향해 몸짓하고 있었다. 주님과의 동행이라면 어떠한 어둠도 주님의 빛을 이길 수 없기에 그 강한 열망으로 빛의 삶을 살아낼 수 있으리라 희망하고 있었다.
3. 흐드러진 감나무가지의 몫
성소자 수도자 등 포르치운쿨라로 향한 전체 팀이 구례성당에 집결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전체 프란치스칸 가족이 함께 모인 것이다. 남은 기간은 마음과 귀와 눈을 열어 오감을 통해 주님 말씀을 깨닫게 되길 기도했다. 긴 행렬을 따라 포르치운쿨라 주제를 담은 프랑카드를 몸에 두르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미스코리아가 되어 행진하듯 깃발을 들고 주님 향해 뽐내며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주님을 따르는 제자 중 한명처럼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걸었다.
산길을 걸으며 라베르나 은둔소를 향해 걸을 때는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기도하시고 오상을 받으신 성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주님을 모시는 영적 공간이라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거룩해지는 듯 했다. 이 여정에서 주님의 소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줄이고 마음을 비우고 주님의 것으로 채워야함을 묵상했다. 자연과 형제들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 더욱 충실하고 단순하게 걸어야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온갖 피조물들은 속삭이고 있었다. 대나무 숲길에서는 대나무의 곧음을 묵상하게 되었다. 삶속에서 만나는 옳고 그름을 선택 할 때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살아야함을 묵상하게 되는 숲길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에 나눔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오신 신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이 보이느냐고 물으셨다.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더니 신부님께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귀하고 너도 귀한 존재로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만드신 귀한 존재이다. 우리옆에 있는 자매, 형제 속에 하느님이 계시니 조금 앞선다고 조금 뒤쳐진다고 함부로 말하고 대할 수 있겠느냐?’며 반문하신다.
그동안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쉽게 판단하고 세상의 잣대로만 보았음을 반성하였다.
이제 드디어 산청 성심원을 향한 막바지 행진길에 접어들었다.
이 여정에서 만난 형제, 자매, 신부님, 수녀님의 모습들!
주님께 주신 몫에 충실하고자 그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는 목적만은 같은 듯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을 형제회, 형제, 자매들의 정성어린 도움을 받으며 주님의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베풀어주시는 은총과 음식을 받아먹으며 내가 수고한 것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의 음성처럼 살포시 불어오는 바람, 인내를 깨닫게 하는 뙤약볕, 들에 핀 꽃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인간이 피조물을 아끼고 어우러질 때 세상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산자락을 넘어 마을로 향하게 되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마을은 아주 평화롭게 보였다. 지난 일정의 파노라마처럼 스치며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함이 밀려왔다.
‘어찌 이리도 사랑하시기에 모든 일을 다 뒤로 하게 하시고 이곳에 불러주신 것일까?’ 어쩌면 교만하여 알아차리지 못하니 이곳에 부르시어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하신 것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흘러내린다. 오로지 이순간만은 시 공간을 초월하여 주님과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길가 한복판에 주저앉았다. 주님께 침묵하며 봉헌하는 시간이고 싶었다. 가슴에서 복받치듯 뜨거운 감사의 마음이 소용돌이 쳤다.
성령께서 인도해주시는 기쁨과 통회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주님께서는 부족한 죄인을 아끼시어 어느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주님을 따르도록 기다려주며 깨우치고 계셨다.
길가 한옥의 담장넘어 길게 늘어진 감나무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가지를 지탱하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가느다란 줄기에는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저 여린 나뭇가지도 제 몫을 다하고 있는데, 내게 주신 몫에 대하여 순종하는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힘들다고 불평하고 인내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스쳤다. 이 세상 살면서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에 대하여 달게 받고 짊어지고 가리라 마음먹어본다. 세상의 중심이 아닌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으로 채워야겠다.
성프란시스코 성인은 나환자의 역겨움이 단맛으로 느껴졌다고 하셨는데 나환자까지는 아니어도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도 단맛으로 느끼게 될 수 있어야함을 깨닫게 되었다. 작고 낮은 자 되어 가족에게 더욱 사랑을 전하고 직장에서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을 죽임으로서 주님을 드러나게 해야겠다. 물질의 풍요로움을 갈구하기보다는 절약과 가난의 정신으로 매순간 깨어있어야겠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내자.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주님을 믿으며 주어지는 십자가를 달게 받아 짊어지고 가리라. 남은 인생은 좀더 다른 모습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닮고자 흉내내며 가보리라. 어둠과 빛이 공존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힌 프란치스코성인의 고백처럼 제 마음의 어두움을 비추어주실 주님을 믿기에 부족한 자신을 봉헌하고 다시 행진을 시작하고자 한다.
“ 나는 걷는다. 나의 인생을! 주님의 이름으로 걷는다!”
김금중크리스티나
2016년 도보행진기-"길따라 주님따라"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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